꽃 농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학교 졸업하고 군대 다녀와서, 83년도에 태안에 화훼 농사가 도입되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아스파거스와 같은 소재 품종부터 재배를 시작했었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꽃들을 했었는데 지금은 백합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하고 있죠.

제 아내는 원래 미용 일을 했었는데 동서 소개로 저를 만나면서 결혼하고 꽃 농사를 같이 짓게 된 거죠. 전에도 지금도 ‘가위’ 사용하는 직업이 아내의 운명이었던 거죠. 하하

백합을 보다 전문적으로 하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시작할 당시에 일본에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품종이었어요. 결국 경쟁력이 좋은 품종을 선택하게 된 거죠. 다른 품종에 비해 키우는 것도 어렵지 않으면서 고소득 품종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철포 백합’을 재배하다가 ‘오리엔탈’이라는 품종으로 바꿔서 약 15년 정도 재배했죠. 안 해본 백합 품종이 없어요. 시베리아, 메두사 등등 다양하게 했었어요. 지금은 ‘우리타워’라는 품종을 재배하고 있어요.

 

백합은 수술에서 나오는 가루가 묻어나서 당황한 적이 있어요.

저희가 출하할 때는 백합이 몽우리 졌을 때이기 때문에 묻어 나는 일이 없는데 고객들이 꽃을 사용하실 때 묻어 나서 많이 당황하시는 것 같아요.
팁을 드리면, 꽃이 피기 시작할 때 가운데의 큰 암술 옆에 5-6개의 수술을 따주면 돼요. 종종 암술을 제거하면 오래 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테스트해보니 전혀 상관없더라고요. 가루가 떨어지는 수술만 꽃이 필 무렵 잘 제거해주면 잘 사용할 수 있어요. 

 

 농사를 지으시며 언제 가장 힘드셨나요?

글쎄요. 꽃 농사를 지으면서도 한동도 꽃을 버리거나 한 적은 없지만, 다들 그렇듯 ‘곤파스’ 태풍 때 손해가 커서 힘들었고 그 뒤로는 특별히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다만, 예전에 비해서 조화나, 드라이플라워 사용이 늘어나면서 생화 시장이 마냥 좋지는 않죠. 백합이 꽃꽂이에도 많이 사용되지만 결혼식에서나 상갓집에서 많이 사용 되는 꽃인데 요즘은 그곳에서도 조화를 많이 사용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격 경쟁력이 많이 낮아졌어요.

농부들이 가장 행복할 때는 내가 키운 작물이 좋은 가격에 팔릴 때이니, 힘든 일이라면 가격이 떨어진 요즘이겠죠. 

 

고객에게 농부님의 꽃이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시나요?

제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안재욱의 ‘친구’에요. 저도 그 노래 가사가 참 좋아요. 힘든 시간들을 보낼 때 늘 곁에 있어주는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친구’에 대한 내용이죠. 그런 꽃이 되었으면 해요. 늘 곁에 예쁘게 피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는 꽃이요. 꽃에 너무 거창한 의미 부여를 한 것 같이 느끼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요.

예쁜 꽃을 보며 느낄 수 있는 행복과 위로는 직접 경험해보면 알 수 있어요. 하루를 시작하며 화장대, 식탁에 펴져 있는 꽃을 보며 행복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날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낼 수 있는 힘을 주거든요. 제 꽃이 그런 꽃으로 남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