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농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91년도부터 시작했어요. 태안에 상장 회장 보조 사업이 있었는데 그 사업을 동창 친구들과 시작하게 된 거에요. 그때부터 장미 농사를 시작했으니 26-27년 되었네요.

 

초창기에는 고양시 파주에 농가가 많아서 견학을 다녔어요. 장미는 질병이 많아서 병에 따라 약을 잘 써줘야 해요. 견학을 가면 실제 사용하는 약들을 다 숨겨 놓거나 아예 다른 약을 추천해주는 곳도 많았어요.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잘 하고 싶어 시 군청에 가서 교육을 계속 받았는데 그때 당시에 1박 2일, 2박 3일 교육받은 수료증이 어마어마해요.
 
장미 농장 농부님 (박미경 / 김남한 / 김한필 농부님) 

장미 농사가 다른 꽃들에 비해 더 어렵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그래서 요즘은 장미 농가들이 많이 줄고 있는 추세에요. 장미 농사는 다른 꽃들에 비해 환경 조절도 까다롭고 질병들도 많아서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해요. 그렇게 어렵게 농사를 짓고 나도 장미를 대체 하는 리시안셔스, 작약 등 많이 생겨서 가격도 높지 않아요. 
 
제가 처음 시작 했을 때 장미 한단 가격과 지금의 가격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농사 짓는데 들어가는 재료 등 물가는 상승하는데 꽃값은 많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장미 농사를 짓는 것이 더 힘들어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미 농사를 계속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처음 시작부터 장미 농사를 지었고, 지나온 세월만큼 장미에 대한 애착이 높아요제가 우리 꽃을 참 사랑하거든요.
 
또 작목을 전환한다는 것도 사실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토양을 해야 되는데 염료 때문에 다른 식물을 심으려면 2년 동안 농사를 짓지 못해요. 그럼 약 2-3년 동안은 수입이 없기 때문에 사업적으로도 작목 전환이 엄청 어려운 거에요.
 

장미 농사지으시며 힘드셨던 때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2010년 태풍 곤파스 때문에 하우스가 일부 망가져서 힘들었죠. 하지만  결국 그 순간들도 이겨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꽃이 참 예쁘고 아름답지만 저에게는 본업이기 때문에 좌절하고 포기해버리면 안 되는 일인 거죠.
 
또 병이 오게 되면 한순간에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데 그럼 참 힘들죠. 그럼 가격도 가격이지만 애정 담아 키운 꽃들이 죽으니 마음이 많이 아파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제가 꽃을 참 사랑하거든요.
 
그리고 장미 농사는 정말 쉴 틈이 없기 때문에 아내와 함께 어디를 가는 것이 불가능해요. 둘 중에 한 사람은 꼭 하우스에 있어야 되거든요.  여행도 번갈아가며 친구들과 다녀오고 가족 여행은 절대 못 가요. 참 아쉬운 부분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가려고 해도 일반 사람들은 농사 지식이 없으니 거의 불가능하죠.
 

일상에서 행복은 어디서 찾으시나요?

 
결국 제 행복도 꽃이에요. 경매 가격이 잘 나오면 기분이 좋죠. 내가 출하한 꽃이 전국에서 최고의 시세를 받으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에요. 내 자식이 대회에 나가서 1등 한 거니까 아주 좋죠. 제 최고의 즐거움이에요.
 

 그런 농부님의 꽃이 고객에게 어떤 꽃이길 바라시나요?

 
자식 농사 지어 본 사람이면 다 알 거에요. 밖에 나가서 예쁨 받았으면 좋겠죠. 그리고 그 예쁨을 잠깐 받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오래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래갈 수 있도록 튼튼하게 잘 키워야죠.
 
전에 결혼식을 갔는데 거기에 꽃들이 참 예쁘더라고요. 그 꽃들을 보면서 생각해 보니까 ‘지금 이 꽃이 내 꽃일 수도 있겠다.’ ‘내 꽃도 어디선가 이렇게 예쁜 순간들에서 예쁨을 받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더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김남한 장미는 최고다.’라는 말에 대한 책임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