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농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벼농사도 짓고 돼지랑 소도 키웠어요. 그러다 김남한 농부하고 같이 꽃 농사를 시작하게 됐죠. 그러니 2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때 다 같이 교육도 다니고, 견학도 다니고 그랬어요. 꽃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재미있었고 힘든 줄 몰랐던 것 같아요. 아주 열정이 넘쳐났죠.
 
그때 당시에는 약 500평 정도로 시작했었어요. 지금은 하우스 시설이 1,500평 있고, 그 중 장미는 900평 정도 돼요. 사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규모를 많이 줄였어요.
 

농사 규모를 줄이신 이유가 있으세요?

 
우리 식구, 그러니까 우리 안사람이 같이 농사짓는데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크게 다쳤어요. 태풍 '곤파스’로 하우스가 반타작 났을 때도 힘들었지만 아내가 아팠던 그때가 제일 힘든 시기였어요. ‘식물인간’과 같았다고 보면 되죠. 농사가 본업이라 마냥 일을 쉴 수 없으니 당시에 움직이지 못해서 딸들이 간호하고, 저는 혼자 일을 했어요. 그땐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많이 힘들었죠.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일은 해야 하니 곁에 있어 줄 수 없는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도 지금은 정말 수술과 치료가 잘되어 다시 함께 일하고 있어요. 예전만큼 몸이 편하지 못하지만 건강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래서 제가 우리 식구 말을 잘 들어야 돼요. 아주 고마운 사람이에요.
 

27년 동안 장미 농사만 지으셨는데 가장 애착 가는 품종이 있으신가요?

 
꽃 농사 시작한 초창기에 인기 있었던 ‘레드산드라’가 애착이 가요. 지금은 고객들이 선호하는 트랜드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재배하고 있진 않지만 그 당시 정말 인기였고, 젊었을 때 그 꽃 엄청 열심히 공부했었거든요.
 
꽃도 패션처럼 유행이 있어요. 그래서 2-3년 정도 되면 품종 변환을 해야 하죠. 요즘은 화형이 큰 품종을 선호하고 색상 트랜드도 빨리 바뀌니까 그걸 따라가야 해요. 그래서 지금은 샤만트와 푸에고 두 가지를 재배하고 있어요. 
 

장미꽃은 사장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제일 정확한 답은 먹고 살 수 있는 일이죠. 하하. 그게 정답이에요. 근데 그 일을 27년 넘게 하니까 이제 자연스럽게 제 일생의 일부가 되었어요. 제가 행복할 때 힘들 때 항상 꽃들은 제 곁에 있었거든요. 제 가족과 같은 거에요. 늘 항상 있는 거죠. 행복할 때도 힘들 때도 그냥 늘 항상 제 곁에 있었어요.
 

그런 꽃이 고객에게 어떤 꽃이 되길 바라시나요?

저한테 그랬던 것처럼 가족과 같은 꽃이 되길 바라요.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에 가면 두 곳 모두 꽃이 가득하잖아요. 꽃은 그런 존재에요. 기쁘고 힘들 때 응원, 축하, 위로가 되는 그런 일상 속의 가족 같은 존재에요. 제 꽃도 그런 꽃이 되길 바라요.